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작전 (문단 편집) === [[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사고|빌헬름 구스틀로프호 격침]] === 한편 작전이 시작되자 [[소련 해군]]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.[* 민간인들의 철수 행렬을 공격하는 것이 비인도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, 당시 복수심에 휩싸여 있던 소련군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. 또한 철수 행렬에 민간인뿐만 아니라 병력도 포함되었기에 공격 자체는 국제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었다. 무엇보다 독일군 역시 1941년 소련 피난민들이 잔뜩 탄 병원선 [[아르메니아(병원선)|아르메니아 호]]를 격침시켜 수천 명을 수장시킨 적이 있었기에 소련을 비난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.] 당시 발트해에 전개된 소련 해군의 수상함 전략은 대단히 미약했던 관계로 대부분의 공격은 [[잠수함]]이나 항공기로 이루어졌다. [[파일:external/us.acidcow.com/acid_picdump_48.jpg]]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마침내 일이 터진다. 1945년 1월 30일, 항구 [[킬]]을 목적지로 그단스크에서 출발한 독일 여객선 [[빌헬름 구스틀로프]]호가 소련 해군의 [[S급 잠수함]] S-13에 [[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사고|격침당한 것이다.]] 이 사건으로 무려 '''9,500명에서 최대 1만여 명'''에 달하는 피난민들과 부상병들이 차가운 발트해의 바다에서 사망했다.[* 사건의 자세한 전말은 [[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사고]] 문서를 참조.] 이후로도 소련군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피해가 속출했는데, 대표적으로 2월 9일에는 3,000명-4,000명이 승선한 상태로 필라우[* 현 [[칼리닌그라드]] 주 발티스크 시]를 출항한 SS 제너럴 폰 슈토이벤(General von Steuben) 호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'''S-13의'''[* 빌헬름 구스틀로프를 격침시킨 그 S-13 맞다. 참고로 이 때문에 S-13의 함장 알렉산드로 마리네스코 소령은 히틀러로부터 '''독일 국민의 적'''으로 지정되었다.] 공격으로 격침되었다. 생존자는 고작 650명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